Second Brain

제2의 뇌(Second Brain)란 무엇인가?

검은배 2021. 3. 2. 12:33

지식노동의 기본은 글을 읽고 쓰는 것이다. 대개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문제가 된다. 소재가 없거나 고갈되거나, 퍼포먼스가 너무 안나거나, 글쓰기에 필요한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느끼거나... .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커서만 깜빡이는 빈 화면을 한동안 응시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평소 글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스쳤던 기발한 아이디어, 탁월한 비유, 멋진 표현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그것은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에만 사라진다. 대개 결말은 웹 브라우저 즐겨찾기 한바퀴와 소셜 친구들 안부 확인으로 이어진다. 예상대로 그들은 여전히 숨 쉰 채 발견된다. 드물게 자신의 낮은 생산성에 대한 자책과 함께 다양한 생산성 도구들의 탐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워드에서 에버노트, 원노트, 노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트 앱들이 탐색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이다

돌이켜보건대 더 좋은 생산성 도구를 탐색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더 좋은 도구는 높은 확률로 탐색한 노력 이상의 생산성으로 보답해준다. 문제가 있다면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각각의 도구들은 자신의 강점과 기능에 따라 강요되거나 규정되는 워크플로우가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도구가 규정한 방식에 따라 워크플로우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도구는 목적을 위한 수단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순서를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 

목적을 명확히 하고 - 이건 쉽다. 사고의 촉진 및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글쓰기 - 이에 필요한 방법론과 워크플로우를 확립하고 - 이건 어렵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학습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수 밖에 없다. - 그에 걸맞는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다.

'제2의 뇌'는 이같은 사고의 전환과정에서 만나게 된 개념이다. 이 개념의 정확한 기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자기계발과 컨설팅 시장이 발달된 미국에서 나온 걸로 추정되고, 티아고 포르테 Tiago Forte라는 생산성 전문가가 운영하는 Building a Second Brain이라는 온라인 코스가 자주 언급된다. 그의 온라인 코스는 엄청난 고가인데, 그의 블로그와 그의 제자(?)들이 정리해 놓은 정보들을 통해 대략적인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https://www.buildingasecondbrain.com/

제2의 뇌란 물리적인 신체 외부에 실제 뇌와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뇌는 신체 기관 중 사고를 담당하며 정보의 입출력을 관장한다. 뇌는 정보의 저장 뿐 아니라 가공, 조직화, 변환까지 도맡는데, 제2의 뇌 역시 같은 역할을 부여받는다. 제2의 뇌의 물리적 실체는 컴퓨터다. 

티아고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제2의 뇌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 영감, 통찰력, 연결을 저장하고 체계적으로 상기시키는 방법론이다 . 그것은 현대의 기술과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우리의 기억력과 지성을 확장시킨다.

거창해보이지만 요점은 간단하다. 잊어버리지 않고 나중에 잘 써먹을 수 있도록 평소에 메모/노트 필기를 잘하란 얘기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얘기고 여기서 끝난다면 '노오오오오오력'만 강조하던 쌍팔년도 자기계발법과 다를 게 없다. 메모의 중요성이 강조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득력 있게 제시된 체계적인 구축 방법론과 이에 공명하는 새로운 발상의 생산성 도구들이 출현함으로써, 제2의 뇌 구축은 보다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티아고가 제시한 제2의 뇌 구축의 핵심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제2의 뇌 구축은 아이디어/정보의 수집(Remember), 연결(Connect), 결과물 창출(Create)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하나의 중앙집중화된 장소에 아이디어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반적인 노트/메모의 기능에 해당한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글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구절이나, 길을 가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적는 행위를 해왔다. 우리의 뇌는 외부의 자극을 통해 반응하고, 그것은 새로운 자극을 생성한다. 1단계는 이것을 외부에 있는 보관소에 전송하는 것이다. 즉 당신이 모종의 이유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 것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출발이다. 여기에는 책, 영화, 뉴스, 웹, 팟캐스트, 유튜브, 영화, 웹툰, 소셜 미디어 등 명확한 출처가 있는 것부터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자극, 머리 감다 문득 떠오른 세상을 뒤엎을 아이디어까지 모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노트/메모라 할 때는 여기까지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기록, 보관으로서의 노트. 티아고는 1단계 수집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몇가지 원칙들을 제시함으로써, 1단계가 단순한 기록, 보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큐레이터처럼 생각하라.

우리가 소비하는 것에 대해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보길 원하는 것에 좌우될 것이다.

기계적,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할 게 아니라, 큐레이터처럼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AI가 맞춤광고를 하고 상품추천을 하는 시대에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상품 뿐 아니라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알고리즘 시대의 경쟁력은 알고리즘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 즉 큐레이션이다.

두번째, 수집한 내용은 주제가 아닌, 프로젝트별로 정리하라.

먼지 쌓인 창고에 언제적인지도 모를 물건들이 가득한 것은 모든 보관소의 숙명이다. 목적과 기간에 따라 분류되어 있는 프로젝트 별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프로젝트의 수행이라는 명확한 동기가 자료의 활용도를 높여준다.

세번째, 공명하는 것만 간직하라.

티아고는 자료의 수집을 결정할 때 그것을 너무 무거운 - 고도의 지적, 분석적 - 선택으로 만들지 말라고 권유한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수집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수집하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은, 수집된 자료가 당신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당신의 무언가를 존중하면서 그 무언가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훈련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2단계는 수집한 자료의 패턴과 연관성을 토대로 그것을 연결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수집된 정보가 '하나의 중앙집중화된 장소'에 모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2단계, '연결'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보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혼용이 가능해진다. 진화론 서적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이 주식 투자에 대한 노트로 연결되고 그것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믿거나말거나 애플 우주선 사옥의 디자인 철학이 우연한 만남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던가. 예상치 못한 연결과 패턴을 쉽게 만나게 하는 것은 제2의 뇌를 디자인할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상치 못한 연결과 패턴의 다른 표현이 창의성이란 걸 알고 있다. 제2의 뇌는 뉴런의 연결을 모방한 시스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 이미지는 제2의 뇌 구축 방법론을 따라 디자인된 옵시디언이라는 노트 앱의 스크린샷이다. <오리지널스>란 책의 요약 노트로부터 촉발된 여러 노트(사고)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진화론의 어떤 구절이 실제 주식 투자로 이어지기까지 이루어졌던 일련의 연결과 구성이 2단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강조해 둘 것은 각 단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자기완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노트는 상호 유기적이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진화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도로 구조화되고 완벽주의적인 노트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유혹적일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소스가 훨씬 더 늦게까지 가치가 있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초점은 지금 작성하고 있는 노트의 독자가 미래의 자신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노트는 최종 완성본이 아니며, 미래의 자신이 작업할 기초 자원이다. 미래의 자신이 좀더 수월하게 높은 수준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지금 당장 당신이 할 일이다. 여기에는 노트의 출처와 작업 진척도를 표시한다거나, 당신의 관점에서 수집된 자료를 요약하고 코멘트를 다는 작업 등이 포함된다.

3단계는 현실 세계에서의 실제 결과물을 창출하는 것이다.

제1의 뇌는 뉴런의 연결을 통해 실제 행동을 촉발한다. 제2의 뇌 역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팔다리는 움직이게 하지 못하지만,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책을 내고,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는 있다. 이것이 애초에 제2의 뇌를 구축하려 한 목적이다.  

커서만 깜빡이는 빈 화면에 대한 공포가 이 글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제2의 뇌에 충분한 양의 자료가 쌓여 있다면, 이제 관건은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조립과 연결의 문제가 된다.

문제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있는 것을 정리함으로써 해결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와튼 스쿨 조직심리학 교수 아담 그랜트 역시 창의성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독창성이 뛰어난 인물들은 일을 미루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건너뛰지는 않는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꾸물거리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고, 수정, 보완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
 ...

"(마틴 루터) 킹이 연설문을 작성했다고 하기보다는 예전에 여러 번 활용했던 자료들을 순서를 바꾸거나 각색해서 한데 모은 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킹은 연설을 하는 도중에 내용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었다" 

- 아담 그랜트

인용된 내용은 창의성의 여러 특징 중 미루기와 꾸물거림에 대한 예시지만, 제2의 뇌 구축 하의 노트 작성 과정이라 봐도 무방하다. 의도된 지연 과정 중에 축적된 노트들은 최종결과물 산출의 무게를 일상적인 노트 작성 수준으로 완화시키는 것은 물론 더욱 창의적인 결과물로 보답한다.

완성도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과물의 창출과 공유가 지연되는 것도 반드시 피해야 한다. 결과물 창출은 제2의 뇌 구축의 최종 목적이자,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정보는 그것을 사용할 때 지식이 된다.

모든 것이 "준비"될 때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정보를 얻고 모든 출처를 다시 확인하고 검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유혹적 일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별 및 저장하고, 검토 및 요약하고, 일련의 중간 패킷을 만든 다음 두 번째 두뇌로 다시 재활용하면 완성 된 제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뇌가 새로운 정보의 입출력으로 끝없이 업데이트 되듯, 제2의 뇌 역시 마찬가지다. 최종운명이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과정으로서의 노트'가, 그것의 최종운명이다. 

https://maggieappleton.com/basb


정리하면 제2의 뇌 구축은 정보의 수집(capture), 요약, 연결, 구성, 공유를 통해 창의력과 생산력을 촉진하는 정보처리 방법론 - 디지털 노트 작성을 통해 수행하는 - 이라 할 수 있다.

그중 프로세스의 처음과 끝이라 할 수 있는 수집(capture)과 공유 부분은 상대적으로 익숙한 부분이다. 웹 클리퍼를 이용해서 인상적인 기사를 클리핑하거나, 워드나 에버노트를 이용해서 원고 작성 후 블로그에 포스팅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개념적으로 가장 생소하고 실제 실행에 있어 어려운 것이 '연결'과 '구성'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제2의 뇌 구축이 우리의 뇌를 모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위계적인 카테고리 구조에 익숙하다. 우리 주변의 현실은 온통 폴더라는 서랍 속의 온갖 파일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쓸 때, 나의 뇌에서 자기계발이라는 파티션에 들어가 생산성이란 폴더를 찾고 그 안에서 '제2의 뇌' 항목을 꺼내 든 게 아니다. 위계 없는 무작위 연상을 통한 무한 연결이 우리 두뇌의 작동방식에 더 가깝다.

최근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한 노트필기법, 사고법 등이 발굴되고 재조명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것이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방법론이다. 제텔카스텐은 창시자의 생생한 성공 사례와 구체적인 워크플로우 제시를 통해 수많은 신도들을 낳았다. 제2의 뇌 구축 역시 제텔카스텐 방법론의 현대적 확장에 해당한다.

이후 포스팅에서는 제텔카스텐 방법론에 대한 소개와 제2의 뇌 구축에 도움이 될 디지털 도구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