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주린이 버전 리뷰

검은배 2021. 2. 26. 17:21

나는 전설이다

는 피터 린치고 나는 주린이다. 실제로 주식 거래를 해본 적도 없고,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평생 주식과 담을 쌓은 삶을 살았으나,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관심을 안가질래야 안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주린이의 시선에서, 조금은 외부적인 관점에서 책을 읽어보았다. 이 책은 평생 내가 두번째 읽은 주식 책이다.(첫번째 책은 <피터 린치의 투자이야기>)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실용적인 접근법은 용어설명과 튜토리얼이 포함된 가이드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킹 시국에(?), 현자, 전문가, AI, 선수, 사기꾼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걸로 유명한 주식판에서 실용적 접근법이란 여러모로 혼란스러움을 준다. 무엇이 실용적인 것인가? 나는 세월의 시험을 견딘 고전을 통해 기본적인 원칙과 철학을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피터 린치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은 이 목적에 완벽히 부합한다. 

월가의 영웅이자 주린이들의 로망인 피터 린치는 전설적인 성과로 유명하고, 커리어 최전성기 때 "딸들의 자라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멘트를 남기며 깔끔하게 은퇴를 선언한 간지로도 유명하다. 은퇴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인터넷 시대, 불장의 시대에 유튜브와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서 수십년 전에 남긴 촌철살인의 어록들이 끊임 없이 재생되고 있다. 단편적인 클립과 짦은 어록을 통해 접한 게 전부지만, 투자에 대한 그의 일관되면서도 단순한 주장과 그것을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위트에 감탄했다. 한편 본격적인 책에서는 그의 단순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펀드매니저로서의 전문성이 어떻게 발휘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것은 이 책에 없다. 이 책의 주장 전체가 그런 기대를 부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파악한 피터 린치는 극한의 실용주의자다. 사고와 행동에 있어 불필요한 복잡함을 최대한 배제한다. 원칙에 입각한 원자화된 사고가 그의 투자를 이끄는 컨트롤 타워다. 복잡한 맥락(context), 대범한 전망, 비범한 통찰, 정교한 계산 대신 단순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그 단순함을 통해 그는 전설이 되었다. 얼핏 사이비 땡중의 선문답이나, 전국 1등의 "학교수업에만 충실했다" 같은 립서비스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의 투자철학이 허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책의 구성, 문체, 메시지 모두 이를 뒷받침한다. 이 책은 요약하기에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에서 각 부 말미에 요점 페이지가 따로 존재한다. 입시용 참고서를 연상케하는 실용성이다. 요점의 내용은 아주 일반적이다. 보통 요점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본문 중간중간 저자의 인사이트가 번뜩이는 문장들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들이 흔히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 부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디다 줄을 그어야할 지 애를 먹었다. 

피터 린치는 밀도 높은 개념어의 조합을 통해 비범한 주장을 하는 데 관심이 없다. 책은 아주 일반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핵심주장 + 그에 대한 수많은 예시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자면 1부 요점 정리 페이지에 "주식에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주식에서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다. 요점만 보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뭘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수많은 예시를 통해 하나마나한 얘기는 반드시 되새겨야 할 얘기가 되고, 이는 단 하나의 단순한 원칙으로 수렴된다.

그 원칙이란 곧 피터 린치의 투자철학이기도 한데 고맙게도 한줄 요약이 가능하다.

주식시장이 아니라 기업에 투자하라

흔히 주식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이유는 주식시장 자체를 분석하고 예측하려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시장의 예측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 한다. 개미들의 망상 레파토리 중 타임머신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10년 전 그때 삼성전자를 샀더라면? 그때 애플을 샀더라면? 그때 테슬라를 샀더라면? 여기서도 포인트는 삼성전자와 애플과 테슬라가 이렇게 훌륭한 기업인지 지금에야 알았다가 아니다. 여전히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는 괄호로 쳐져 있고 지난 10년간 하늘로 치솟은 그래프만 솟아있다. 

피터 린치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시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장기전망이 아닌 1,2년의 전망은 더욱 더. 당연한 말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승률 100프로짜리 투자자가 탄생할 것이다. 물론 무작위 확률로만 승부가 가려지는 도박판에서도 승자는 나온다. 그러나 자신이 분석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시장 전망에 관심을 끄라고 린치는 주장한다.

린치가 베팅하는 것은 기업이다. 본질적인 기업의 가치와 주가는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 일시적인 경기 변동에 따라 출렁이는 그래프에 마음을 빼앗기면 돈을 잃는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대공황, 오일파동, 블랙 먼데이) 결국 경기는 회복되고, 경제는 성장하며 훌륭한 기업은 주가로 보답받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정직한 낙관은 린치의 투자 철학의 기본 전제다. 

"주식에서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는 이런 의미에서 내게는 두 가지 의미로 들린다. 

첫째, 종목 선정을 잘못했을 경우, 즉 투자대상 기업을 잘못 선택했을 때 손실을 볼 것이다. 이는 기업에 대한 공부와 분석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린치는 줄곧 한탄한다. 간단한 쇼핑에도 그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사람들이 전 재산의 반을 투자하는 주식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너무도 손쉽게 선택한다고. ) 

두번 째, 시장과 미국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 때 손실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종목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합당하고 그것을 철회할 근본적인 이유가 없다면 떨어지는 주가에 공포에 차 매도 버튼을 누를 일도, 치솟는 주가에 지레 놀라 향후 수년간 수 배에 이를지도 모를 수익을 스스로 걷어찰 일도 없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 나오지만 매도와 매수의 시점 역시 주식시장이 아니라 기업을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한다. 투자를 결심하게 만든 기업의 스토리는 처음 종목을 선택할 때도, 이후 매도 시점을 선택할 때도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린치가 경멸하는 것은 일정 수익과 손실에 따라 기계적으로 매도, 매수를 반복하는 프로그램 매매다. 여기에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다. 거래중개인의 배만 불리는 이런 거래방식에서는 오직 손해만 볼 뿐이며, 수익을 얻더라도 10루타의 짜릿함을 맛볼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업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역시 린치의 대답은 단순하다. 냉장고가 이뻐서 삼성전자 주식을 샀더니 몇년 후 대박이 났더라는 식의 '주식미담' 원조가 알고 보니 피터 린치였다. 책 속에는 피터 린치의 와이프가 만족했던 스타킹 회사와 린치가 즐겨먹던 멕시코 음식점에 대한 투자 성공 사례가 자세히 나온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내는 회사가 좋은 회사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회사이다. 이는 재무제표를 통해서 누구나 확인 가능하다. 세상사 복잡하니 더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린치는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빚이 없고 이익을 내는 회사는 어떤 시장의 평지풍파에도 망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린치에 따르면 개인도 얼마든지 전문가를 이기고 기관을 이길 수 있는 게 주식투자다. 개인이 전문가보다 유리한 것은 불필요한 제약과 시간낭비에서 벗어나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린치는 줄곧 '월 스트리트의 똑똑한 바보'를 조롱한다. 전문가가 시장과 주가의 흐름을 온갖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예측하고 수백개의 종목을 분석할 때, 개인투자자인 여러분은 당신이 선택한 몇개의 종목을 주시하고 있으면 된다. 당신이 선택한 기업의 스토리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전문가의 조언 따위 무시하고 당신의 판단을 믿어라. 역사상 그 어떤 전문가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남겼던 전문가들 사이의 전문가 피터 린치의 조언이다.


책의 요점 정리 페이지에서 다시 요약했다.

● 1부 요점

  • 전문가의 기술이나 지혜를 과대평가하지 마라.
  •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라.
  • 경제를 예측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 주식투자의 장기 수익률은 비교적 예측하기 쉬우며, 채권투자의 장기 수익률보다 훨씬 높다.
  • 특정 업종이나 제품의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면 주식투자에 유리하다.

● 2부 요점

  • 주식의 유형을 분류하면 투자를 통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 특정 제품에서 이익을 기대한다면 회사의 규모를 고려하라.(특정 제품이 회사 매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라는 의미)
  • 첫 번째 상승 국면을 놓치더라도 회사의 계획이 효과가 있는지 좀 더 지켜보는 편이 낫다.
  • 비성장 업종에서 적당한 속도(20~25퍼센트)로 성장하는 회사가 이상적인 투자대상이다.
  • 주가수익비율(PER)을 세심하게 분석하라. 주가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면, 만사가 잘 풀려나가도 한 푼도 벌지 못한다.
  • 기관투자자의 보유량이 적거나 없는 회사를 찾아라.

● 3부 요점

  • 유형이 다른 주식은 위험과 보상도 다르다.
  • 1년이나 2년 후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대형우량주에 투자하여 20~30퍼센트 가량의 수익을 몇 차례 반복하는 방법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
  • 주식이 상승한다고 해서 안심하고 스토리 점검을 중단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