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 속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in my mind
마치 테드 창의 SF소설 제목을 연상케하는 이 문구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어느 웹사이트 이름이다. 이 사이트의 주인은 앤서니라는 프랑스 기업가다. 웹사이트의 내용은 그의 개인적 관심사와 사고의 편린들을 기록한 사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냥 좀더 사적인 형태의 블로그나 개인 웹사이트일까? 그래서 저런 파격적인 제목이 필요한 것일까. 앤서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디지털 가든(Digital Garden)'이라 지칭하는데, 블로그나 유튜브와 차별되는 그것만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 형식보다 우선시되는 컨텐츠
- 명시적, 암묵적 규칙 없음(플랫폼과 커뮤니티 모두에서)
- 기술적 단순성: 마크다운(Markdown), 깃허브(GitHub), 옵시디언(Obsidian)
- 내가 만든 컨텐츠의 우선 순위를 자유롭게 지정
- 연대기 없음
- 상업적인 면 없음
- 시간에 따른 가변성
- 일관성이 있든 없든 내가 알고 있고 말하고 싶은 것을 공유
- 처음에는 매우 멀었던 주제와 아이디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연결
-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 깊이 빠져들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나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함
이것만 봐서는 무슨 의미인지 완전히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힌트는 디지털 가든이라는 생소한 용어에 있다. 나는 이 용어를 노트 앱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던 중 제2의 뇌( Second Brain) 개념과 동시에 접했다. 좀더 찾아보니 두 개념 모두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디지털 가든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논의할만한 주제다. 디지털 가든( 혹은 제2의 뇌 개념)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그것이 지식노동자로서의 자기계발, 생산성에 대한 최근의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 누구에게나 자기계발은 중요하다. 문제는 AI 시대, 4차산업시대 지식노동자에게 필요한 자기계발이다.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다면 사고(思考)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디지털 가든 개념의 역사적 유래는 20년 이상된 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찾을 수 있다. 나의 관심사는 디지털 가든이 사고의 본질과 그것의 성장에 대한 적절한 심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가든은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명명이다. 일순 번뜩이는 천재적 영감은 창의성에 대한 우리의 오랜 신화이지만, 그조차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형태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음의 정원에 사고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는 바를 지켜본다. 물론 씨앗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지속적으로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잡초도 뽑아내야 한다. 씨앗 단계에서 사고의 단초를 알아볼 수는 있지만, 최종결과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원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디지털 가든은 현대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해 컴퓨터에서 관리하고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정원이다.
내 관점에서 디지털 가든의 몇가지 특징이 있다.
- 디지털 가든은 블로그에 비해 덜 완결적이다.
- 정원에는 성체식물 뿐 아니라 새싹도 있고 씨앗도 있다.
- 디지털 가든은 사고의 성장, 즉 씨앗의 성체식물로의 성장이 목적이다.
- 사고, 글쓰기, 자기계발에 대한 특정 방법론을 따른다.
- 제텔카스텐(Zettelkasten) 방법론, 제2의 뇌 구축, 에버그린 노트 작성법 등.(향후 포스팅에서 관련 주제들을 지속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
- 사고의 성장이 목적이다보니, 학습(Learning)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 개별 분야에 대한 학습뿐 아니라, 학습 잘하는 법 같은 메타 학습 비중이 높다.
- 디지털 도구를 적극 활용한다.
- 노트 앱을 위시한 다양한 생산성 도구
- 개발자(Soft Engineer) 직군이 많다.
- 크리에이터 직군이 많다.
다시 처음의 앤서니에게 돌아가자. 그는 단지 그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쓴다. 음악, 기업가정신, 가치관, 과학, 다이빙, 스포츠, 프로그래밍 등. 각각의 소재가 자의적인 만큼 개별적인 메모(혹은 아티클 혹은 또다른 무엇) 역시 불균질하다. 단순한 끄적거림에서 좀더 성숙하고 자기완결적인 글까지. 각각의 메모들은 위계적인 카테고리를 통한 하향식 구조가 아니라 상호참조를 통해 구축된 위키의 형태로 배치된다. 이는 명백히 우리의 뇌를 모방한 것이다. 우리의 뇌는 잘 정리된 서랍을 통해 정보를 입출력한다기 보다 종잡을 수 없는 연상 작용을 통해 그것을 수행한다. 웹의 하이퍼링크가 이와 가장 유사한 사례일 것이다.
앤서니가 의도한 것은 자신의 뇌와 유사한 형태의 지식관리시스템(Personal Knowledge Management)을 웹에 구축하는 것이었다. 웹사이트 캡처 화면 우측 상단의 그래픽 뷰가 뇌의 뉴런 연결 그림과 비슷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그리고 앤서니만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 뇌과학, 인지과학의 성과에 기대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하는 여러 방법론들이 소개되었고, 컴퓨터 상에 자신의 '제2의 뇌'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리서치한 바로는 해외의 개발자와 크리에이터 직군에서 이런 움직임들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 직군의 종사자들이 4차산업 시대의 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식노동자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가든, 제2의 뇌 구축에 대한 관심은 생산성 도구의 진화로 이어졌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국에는 노트 앱 노션 열풍이 불어닥쳤다. 내 기억에 에버노트 이후 근 10년만에 노트 앱이 화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 같다. 그런데 해외에선 노션과 별개로 '제2의 뇌' 프레임에 포커싱된 노트 앱이 새로 부상하고 있다. "A note-taking tool for networked thought."란 슬로건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롬 리서치(Roam Research)란 노트 앱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철학과 기능을 제공하는 옵시디언(Obsidian), 렘노트(Remnote) 등이 있고 이 외에도 롬에 영감을 얻은 무수히 많은 노트 앱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 생각에 에버노트, 노션의 기존 인기 노트 앱과 롬 리서치(Roam Research) 류의 '제2의 뇌' 프레임에 포커싱된 노트 앱은 용도나 활용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는 추후에 별도로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참고로 앤서니가 자신의 디지털 가든 구축에 활용한 소프트웨어는 옵시디언이라는 노트 앱이다. 나 역시 현재 옵시디언을 통해 '제2의 뇌'를 구축하는 중이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 발행되는 포스트들은 모두 '제2의 뇌' 구축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