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스타트!
2020년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해다. 코로나라는 파고가 모두의 삶을 덮쳤고, 나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삶의 전 부분이 타격을 입으며, 의지와 상관 없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취미 중 하나는 미드 감상인데, 좋아하는 미드 중 <하우스>라는 의학 드라마가 있다. 수년 전 <하우스>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된 점이 있다. '고통(pain)'은 문학적 비유로 많이 접하지만, 실제로는 온몸 구석구석 저리고 아린 생생한 육체적 감각이란 사실이다. 지독한 다리 통증 탓에 마약성 진통제를 물고 사는 닥터 하우스에게 삶이 고통인 것은 그 어떤 고상한 정신적 가치 때문이 아니다.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1차원적 이유지만 그렇기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아픈 몸은 아픈 정신을 낳고 그것은 주위에게 전파되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우리는 육체적 고통을 너무 쉽게 '아프다'는 언어적 한계 안에 가두려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너무 두려워서일지 모른다. 실제 '통증'은 동물로서 우리를 존재론적으로 규정한다.
지속된 스트레스와 코로나 블루 때문인지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졌다. 어깨가 안올라가고 눈은 침침해졌다. 더 심각한 건 점점 '어휘'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활자중독이라 매순간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하우스가 되어가는 것일까. 뭔가 전기(轉機)가 필요했다.
꽤 긴 슬럼프 기간을 거치며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됐다. 결국 나의 이전 삶만큼이나 앞으로 남은 삶은 지식노동자로서의 삶이란 자각이다. AI 시대, 4차산업 같은 시대적 조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물의 형태는 아직 모른다. 다만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것이든, 삶의 내적 충만을 위한 것이든 그 수단과 결과물은 지식노동을 거칠 것이다.
한때 나는 글쓰기가 직업이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글쓰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부적 글쓰기를 즐기지 않는다. 나는 개인성향 상 오피니언이 강한 편이다. 다행이라면 그런 성향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외부에 어떤 주장을 하고 논쟁을 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긴다. 그게 아니었다면 키보드워리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SNS도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비즈니스플랫폼이 된 지 오래라 업계동향 파악을 위한 미디어로만 소비한다.)
글쓰기는 비단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지식노동의 기본이자 원천이 되는 행위다. 그래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블로그 'Draft'는 그 일환이다. 나는 세 가지 필요성을 느껴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다.
- 반복적인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
- 쓰여진 글은 발행되어야 한다.
- 내부적/외부적 피드백이 필요하다.
노트앱 롬 리서치(Roam Reasrch)의 창업자는 자기네 어플리케이션이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사이의 협업'을 도와준다고 말한다. 비단 특정 툴만이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 이런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외부에 '발행'된 글쓰기라면 동기부여 측면에서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 블로그의 용도는 개인적 글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과거 내가 쓰던 글의 대부분은 오피니언, 리뷰, 크리틱 종류였다. 여기에 정보성 글쓰기, 좀더 라이트한 형태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려 한다.